순교자 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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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교자 현양
  • 200주년 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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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대림 제 1주일) ~ 2021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전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김대건 신부님 이야기

1821년 8월 21일 충남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님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외국을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하여 한국의 첫 사제가 되신 분입니다. 1836년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수학하시고, 1845년 8월 17일 중국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된 신부님은, 조국을 떠난 지 10년만인 1845년 9월 조선으로 귀국하십니다.


돌우물골(지금의 소공동)에 은신처를 두었던 김대건 신부님은 서울에서 용인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써 꽤 넓은 지역을 다니시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거처하시던 은이공소에서 1846년 부활절 미사를 봉헌하셨는데, 이 만남이 귀국 후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었고, 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님의 지시에 따라 성직자 영입을 위한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강화도 인근의 순위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된 김대건 신부님이 치명 순교하시기 전까지 갇혀 계시던 곳이 지금의 청계광장 시작점에 있었던 ‘우포도청’(지금의 광화문우체국 자리)입니다.


신부님은 우포도청에서 세 통의 편지를 쓰셨는데, 그 마지막 편지는 ‘신자들을 위한 회유문’이었습니다. 박해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사랑으로 참으며 격려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맨 마지막에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똑같이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한다.”고 쓰셨습니다.


형 집행이 결정되고 우포도청 옥에서 끌려 나온 신부님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당고개 순교성지를 지나 형장인 새남터에 이르렀을 때는 군문효수형을 구경하고자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웃옷이 반쯤 벗겨져 있었습니다. 군졸들이 신부님의 양쪽 귀를 화살로 뚫고는 얼굴에 물을 뿌리고 그 위에 회를 한 줌 뿌렸습니다. 두 사람이 신부님의 겨드랑이에 나무 몽둥이를 꿰고는 세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렸습니다. 머리채를 새끼로 매어 말뚝처럼 박은 창 자루에 잡아매었습니다. 칼을 든 군졸들 12명이 주위를 빙빙 돌면서 한 번씩 목을 쳤습니다. 신부님은 여덟 번째 칼을 맞고 목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군졸 하나가 머리를 소반에 담아 관장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형 집행을 확인한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조선 최초의 탁덕 김대건 신부님은 그렇게 천상의 영광에 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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