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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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대림 제 1주일) ~ 2021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전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절두산 순교성지 - 기념관 전경

첫 사제의 마지막 순교길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은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인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속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성인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으셨던 마지막 순교길이었습니다. 우포도청 터에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당고개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 그리고 절두산 순교성지에 이르는 치명순교길 순례를 통해 그의 순교영성을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우포도청 터

우포도청(현 광화문 우체국)은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성직자영입을 위하여 새로운 입국 경로를 찾으려고 건너갔던 백령도 인근 해협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순교하기 직전까지 3개월간 투옥되어 국문을 거치면서 신앙을 증언한 장소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6월 19일 한양 포도청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세계지도를 2장 번역하고 ‘조선 지리 개설서’를 작성하였다. 또한 함께 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신앙을 저버리지 않도록 독려하고 성 임치백 요셉에게 세례를 베풀고 처형에 앞서 이곳에서 조선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옥중 서한을 작성하였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려라’ 고 당부하며, ‘내 죽는 것을 부디 서러워하지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 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바란다.’ 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_묵상

김대건 신부님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제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셨습니다.
나 역시 신부님처럼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박순집 증언록에 따르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우포도청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뒤,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를 거쳐 당고개를 지나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도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부제 때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기해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모습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 중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조신철 가롤로, 성 이광렬 요한은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로 유학 갈 때 변문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이다.

 _묵상

이곳을 지나며 김대건 신부님은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가 순교하시며 하느님을 증언하는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아버지를 본받아 순교의 길을 가셨던 것과 같이 나 역시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당고개 순교성지

박순집 증언록에 따르면, 당고개는 1846년 9월 16일(헌종 12년, 병오박해)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새남터로 향한 참수 길에 서소문 밖 네거리를 거쳐 새남터 형장에 도착하기 전 잠시 쉬어 갔던 곳이기도 하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복자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한 곳으로 어머니의 성지로도 불린다. 이곳을 지나가며 자신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열아홉 번째 편지에서 최양업 신부에게, 스무 번째 편지에서는 주교님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사제이자 자식으로서 그분이 느꼈을 고뇌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_묵상

김대건 신부님께서 어머니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과 같이 나 역시 하느님과 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

1846년 9월 16일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군문 효수형을 당한 바로 그 장소라는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순교했지만,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갔다. 1846년 9월 15일 군문 효수 집행명령을 내리고 바로 다음날 한강 백사장에 있는 군 연무장 새남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선고문이 낭독되고 신부님이 마지막 증언을 하셨다.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_묵상

김대건 신부님께서 하느님과의 서약을 목숨 바쳐 지키는 모습을 보이신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과의 약속, 다짐을 얼마나 잘 지키며 살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한국 천주교회는 1846년 김대건 신부의 순교 후 100년이 지난 1946년, 전국 단위의 순교자현양위원회를 결성한 후 10년간의 모금 활동을 통해 양화진에 부지를 매입하고 성지를 조성하였다. 1966년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해 김대건 신부 광장과 기념관을 준공하고, 1967년에 축성된 절두산 순교성지는 기념성당, 성인 유해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 탄생 150주년이 되던 1972년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 동상이 광장에 세워졌다. 성지 일대는 1997년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사적399호)’으로 지정되었다.

 _묵상

김대건 신부님은 새남터에서 치명 순교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된 삶, 영원한 삶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과연 나는 영원한 행복, 하느님의 영광을 희망 삼아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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